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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화 주인공(2) 엘레노어는 자신이 기억하는 녹스 폰 리인하버라는 인물을 되새겨 보았다.
오만과 자만, 허영.
그것들이 그를 상징하는 단어였다.
노력이라는 것과 근본적으로 어울리지 않는.
망나니 녹스.
그것이 세간에서 부르는 녹스의 별명이다.
엘레노어는 미간을 찌푸리며 파라켈수스와 호각으로 싸우는 녹스를 바라보았다.
아무리 봐도 당최 믿을 수 없었다.
동부의 ‘잿빛 이리’라 불리는 파라켈수스의 검을 막아낸다고?
저 하찮은 망나니가?
‘……믿을 수 없어.’ 하지만 오래 고민할 시간은 없었다.
엘레노어가 이끄는 팀을 제외하고도, 파라켈수스의 평민이 주축이 된 팀. 그리고 황녀 페넬로페와 에키드나의 팀까지 모두 산의 정상에 모였기 때문이다.
아마 그들 역시 이번 시험에서 좋은 보석을 얻기 위해서는 깊은 곳에 들어와 마수와 대련해야 한다는 것을 눈치챈 듯하다.
결과적으로 무려 네 개의 최상위 팀이 한 사람이 쥐고 있는 검은 보석을 노리게 되었다.
녹스. 대체 그가 어떻게 보석을 손에 넣었는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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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 없어. 엔트리파워볼 어차피 이렇게 수가 많다면 금방 빼앗길 테니까.’ 1시간이라는 시간은 매우 길다.
당연하게도 수십 명이나 되는 이들을 모두 제치고 홀로 도망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게다가, 버논은 처음부터 EOS파워볼 생도들끼리의 전투를 종용하기도 했다.
그렇기에 작금의 상황은 온전히 오만에 빠진 녹스의 잘못이었다.
그가 자신의 아집을 꺾고 팀을 이뤄 공략에 나섰다면?
자신의 실력이 어떻든 적당히 묻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처럼 몰리는 일도 없었겠지. 로투스바카라
하지만 녹스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최악의 상황을 로투스홀짝 계산하지 않았고, 때문에 적을 만든 것이다.
‘저게 망나니의 방식이기는 하지만 말이에요.’ 엘레노어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이곳에서 도망칠 수 없다.
또한, 검은 보석을 빼앗기게 될 것이다. 오픈홀덤
저 잿빛 머리칼의 청년, 파라켈수스에게.
엘레노어는 고개를 세이프게임 끄덕이며 팀원들에게 지시했다.
“저희는 빠지겠습니다. 검은 보석을 노리는 건 너무 위험해요. ‘잿빛 이리’가 이 판에 끼어든 시점에서 싸움에 끼어드는 건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자고로 상인이란 무엇인가?
독이 든 성배는 마시지 않고, 탈이 날 것은 손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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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하지 않으면 금세 몰락하게 되고 적을 만들기 때문이다.
그런 고로, 그녀는 이런 피를 튀기는 전장에 나설 이유가 없다 판단했다. 이미 그녀 역시 보라색 보석을 손에 넣었다.
또한, 자신은 지금 싸우는 저들과는 다르다.
무조건 1위일 필요는 없다.
자신은 상위권 성적으로 엘리데인을 적당히 졸업하고, 가문으로 돌아가 상단을 제대로 키울 생각이었기에.
아무리 상인이라 해도, 마법에 능통하고 이와 같은 명문 학원을 졸업한다면 큰 도움이 되기 때문에. 그녀는 이곳에 온 것뿐이었다.
당연히 저들과는 시작점부터 다른 것이다.
채앵!
엘레노어가 지시를 내린 직후. 다시 두 사람이 맞부딪힌다.
다시 한번 불꽃이 일며, 파라켈수스와 녹스의 검이 얽혔다.
희미하게 언뜻, 두 사람의 대화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자세히 들리지 않았지만, 그 정도로도 분위기쯤은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다.
“대체 어떻게 나으리가 이정도 실력을 갖고 계신지는 잘 모르겠는데… 나름 재미있네요. 그렇지 않습니까?” “닥치라고 했을 텐데.” 여전히 녹스는 고압적이었고, 파라켈수스는 여유가 넘치는 모습이었다.
사실, 누가 봐도 결과는 이미 나와 있는 싸움이었다.
단지 이름값뿐만이 아니다.
지금 누구의 검 끝이 흔들리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저 검은 파라켈수스에 닿을 수 없어.’ 녹스의 흑도는 뛰어난 절삭력과 예리도로 파라켈수스를 공격하고 있지만, 그에게 딱 한 걸음씩 못 닿고 있었다.
파라켈수스도, 녹스도 누구보다 이를 잘 알고 있겠지.
검을 나누는 기사들은 자고로 몇 합 만에 적과 자신의 경지를 구분한다고들 하니까.
녹스 역시 자신이 기사라면 금세 알아차렸을 것이다. 저토록 힘겹게 싸우고 있는 건 어디까지나 제 체면 때문이겠지.
‘어리석은 행동을 했군요.’ 엘레노어는 그렇게 생각하며 침착히 두 사람의 싸움을 지켜보았다.
녹스 폰 리인하버.
자신에게 수치를 준 남자의 몰락을 기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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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티브 스킬 ‘패자의 위압’이 발동 중입니다.] 사람들은 물어볼 것이다.
파라켈수스. 그와 상대했을 때 내가 승리할 확률이 얼마냐고.
나는 이에 확실하게 답할 수 있다.
제로.
[천재의 시간]을 사용하지 않고서, 나는 그를 상대할 수 없다.
지금까지의 내 여정을 지켜본 사람들이라면,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길 것이다.
어째서?
엄밀히 말하면 내 총 스탯이 더 높은데, 왜 파라켈수스에게 지는 거지?
해볼 만한 거 아닌가. 하고.
‘문제는 스탯이 아니니까.’ 정말 큰 문제는 파라켈수스가 사용하는 검술이었다.
아직 제대로 진가를 보여주지 않고 있지만, 그가 사용하는 검의 이름은 [활인검]. 과거 죽어버린 그의 스승이자… 3인의 검제 중 하나인 셀수스의 검술이었다.
쉽게 말하자면, 테오의 [패도의 흑검]과 맞먹는 검술을. 파라켈수스는 이미 익히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게임이 될 리가 없지.
‘비록 그게 초급이라고 해도 말이야.’ 녀석의 검을 베낄 수 있는 게 아니냐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 역시 불가능하다.
적어도 게임 속 3인의 검제의 검술은 각각의 사용조건이 필요하며 요구되는 원소 역시 다르다.
내 주(主) 원소는 암흑. 파라켈수스의 경우는 강철이다.
따라서 놈의 검을 베낀다는 방법도 기각이란 뜻이지.
‘돌이켜보면, 되레 지금 시점에서 초급까지 익힌 저놈이 괴물이란 소리다.’ 애초에 게임 시작 시점에는 아무 스킬도 갖고 있지 않은 유닛이 더 많다. 거기다 고급 검술일수록 당연히 배우기 어렵다.
그런데.

그는 최고의 검사인 셀수스의 검술을 무려 초급까지 뗐다.
아무리 내가 [암흑가 중급 검술]과 [남부 검술]을 익히고 있다 해도, 이들은 어디까지나 중하급 정도의 검술일 뿐. 상대되지 않는다.
X발.
여러모로 내겐 X같은 일이다.
“검에 사념이 너무 많이 섞여 계십니다?” ‘아차!’
채앵!
파라켈수스가 검을 쳐내며, 내 빈틈을 노려 검을 휘두른다.
나는 발을 반 바퀴 회전시켜 겨우 빗겨 친다.
땅에 빗겨 맞은 파라켈수스의 검이 회전과 함께 재차 허공에 떠오른다.
당연하게도 그 목적지는 내 목.
제기랄. 역시 험한 동부에서 구른 녀석답다.
학원 동기가 될 수도 있는데. 설마하니 뒤를 봐주지도 않고 죽여버릴 생각인 건가?
‘침착해야 한다. 절대 여기서 파라켈수스를 잃을 순 없어.’ 나는 겨우 심호흡을 하며 다시 정면을 보았다.
파라켈수스 역시 뒤에 악마를 때려잡을 때 꼭 필요한 유닛이다.
그가 없이는 마지막 시나리오에 도달할 수 없다.
적어도 27회에 다다르는 내 플레이 경험을 종합했을 때, 그 없이 이너 루나틱의 끝이란 없었다.
여기서 [천재의 시간]을 쓴다면 사람들의 불필요한 시선을 받게 될 수 있는 데다, 자칫 그를 죽이게 될 수도 있다.
아무리 그래도 살초를 섞는 것은 위험하다.
지금은 그저 최대한 시간을 벌어야 한다.

엘레노어를 향한 마수 급습 사건이 벌어지는 바로 그때까지.
그렇다면…… 어떻게?
‘고인물다운 방법으로.’ 나는 목에 힘을 준 채, 쇄도하는 검을 쳐낸 뒤 정면을 보며 말했다.
“하. 파라켈수스… 라고 했나? 그건 네 진짜 이름이 아니지. 그렇지 않나?” 멈칫.
파라켈수스의 찔러 들어오는 검이 일순 멈춘다.
나는 [연기의 귀재]를 믿으며 계속해서이었다.
“네 검. 그게 전 3인의 검제인 셀수스의 검술이라는 걸 내가 모를 것 같나?” “…나으리께서는 무슨 말씀을 하고 싶은 겁니까?” 파라켈수스가 애써 침착히 받았다.
허나 여기서 끝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지.
“네 스승… 그가 이미 죽었다는 걸 알고 있다.” “…그 망할 영감이 뒤지든 살았든, 그게 저와 무슨 상관이라고 그런 말씀을 하시는진 모르겠지만…….” 파라켈수스가 드물게 얼버무릴 때, 나는 확실히 목에 힘을 주며 그의 말을 잘랐다.
“3인의 검제쯤 되는 실력자가 ‘우연히’ 누군가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후웅.
짧은 바람이 마주 선 우리를 스쳐 옷깃을 날리게끔 한다.
말을 뱉어내는 순간, 파라켈수스의 분위기가 일변했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파라켈수스. 그의 스승이자, 3인의 검제 중 하나인 셀수스는 놈의 아버지와 다름없는 자였으니까.
아무리 그가 ‘망할 영감’이라 스승을 부른다 해도, 그건 본심이 아니다.
‘파라켈수스는 가만히 놔둬도 알아서 정점에 오를 수 있는 실력자다. 더구나, 셀수스의 검을 익히고 있는 시점. 학원에서 딱히 배워갈 것도 없지.
그런 놈이 이 학원에 입학한 이유… 그것은.’ 이 학원에 파라켈수스가 입학한 진짜 이유.
그것은 바로 셀수스의 죽음과 엘리데인 아카데미. 나아가 아크하임 제국이 깊은 연관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셀수스를 죽인 자는 이 학원 안에 있다.’ 아직은 그저 심증이지만… 이후 물증이 하나씩 등장하며 파라켈수스는 아크하임 제국에 대한 깊은 분노와 혐오를 느끼게 된다.
또한, 스승의 죽음을 갚아주게 되지.

오직 그만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어쨌든.
나는 지금의 파라켈수스로서는 알 수 없는, 이후에 풀리게 될 정보를 오픈하며 녀석의 동요를 이끌어냈다.
‘……이 정도 정보의 공개는 괜찮아. 어차피 놈도 짐작하고 있었을 테니까.’ 지금은 놈을 쓰러뜨리고 엘레노어를 구하는 게 우선이었다.
그렇게 생각을 마치던 순간.
파라켈수스의 동공이 가늘어졌다가, 이내 원래대로 돌아왔다.
치이익…!
마력이 타오르며 유형화되어 소음을 일으킨다. 이어 그것은 검에 옮겨붙으며 불꽃을 피워냈다.
소스라치게 차가운 감정이 그로부터 새어 나오며 전신에 소름이 돋아오른다.
저 새끼. 10m 밖에서 봐도 화가 난 얼굴이다.
파라켈수스는 무뚝뚝한 목소리로 말했다.
“…존대는 끝이다.” “네 스승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알고 싶지 않은 모양이군?” “그건 팔다리 하나쯤 잘려도 혀만 붙어 있으면 알 수 있거든.” 미친 새끼. 살벌하게 말하네.
챙!
어느새 도약한 파라켈수스가 내게 검을 내질러온다.
그와 동시에, 파라켈수스가 휘두르는 검로가 서서히 바뀌기 시작한다.
점차 검에 섞는 살초가 깊어지며, 스승으로부터 배운 [활인검]의 기초식들로 추정되는 것들이 내게 쏟아진다.
[검과 격투술의 천재].
이 특성이 없었다면 아마 이조차 알아보지 못한 채, 녀석의 검에 베여 쓰러지고 말았겠지.
채앵! 챙! 챙!

‘…집중해야 한다. 집중하지 않으면 한순간에 끝이야.’ 나는 최대한 버티면서 놈의 틈을 노리고 있다.
파라켈수스의 유일한 단점. 그것은 바로 스승의 이야기가 나오게 되면, 일단 동요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지금 그의 눈을 보면 알 수 있다.
적을 죽이기 위한 살기로 번들거리는 동공. 그에 호응하듯 점차 새하얗게 변하는 검까지.
그 모든 것은 놈의 분노를 선연히 담아내고 있었다.
‘이후에 파라켈수스는 이 분노마저 다루게 되며 강해진다. 하지만.’ 지금의 파라켈수스는 강하긴 해도 시작지점의 유닛이다.
그렇다는 것은?
아직 자신의 감정을 다루는 것에 익숙지 않다는 의미다.
그러한 상황에 부닥치게 되면, 그에게는 필연적으로 허점이 생길 수밖에 없고.
‘좋아. 녀석의 검이… 동요하기 시작한다.’ 파라켈수스의 검이 좀 더 매서워진 건 맞다.
하지만 그는 지나치게 분노하고 있다. 이성을 잃은 검은 점차 단순해지며, 제대로 된 방어를 하지 못하고 공격하는 데만 온 신경을 집중하게 된다.
나는 명백히 조소하며 잇는다.
“대체 왜 그러지? 내가 네 스승을 죽인 것도 아닌데.” “네 말을 돌려줘야겠군.” 파라켈수스가 두 눈을 부릅뜨며 검을 휘두른다.
“닥쳐라.”
“어리군.”
나는 살벌한 도발을 계속 이어가며 계속해 놈을 몰아붙였다.
파라켈수스의 검이 점차 초조함으로 물들고, 백색의 검광이 힘을 잃어간다.
이는 내게 퍽 반가운 호재였다.
‘이너 루나틱에서 강한 적과 싸우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 번째는 내가 강해지는 것.
이는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스탯 1을 올리는 데 몇 개월은 우습게 들어가는 세계가 아닌가.
또한, 급할 때 써먹을 방법은 아니니 지금은 기각.

그렇다면 두 번째.
바로 상대를 약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게 포션이든, 다른 무언가 디버프이든 뭐든 상관없다.
지금과 같은 동요를 끌어내는 것 또한 하나의 방법이다.
그렇게 위에 있는 놈들을 끌어내리면 어찌저찌 싸울 수 있게 되는 법.
나는 최대한 [천재의 시간]을 아끼며 파라켈수스와 싸웠다.
촤앗!
하나, 이런 노력 끝에도 천재는 다르다는 것일까?
파라켈수스는 점차 호흡을 되찾고 검을 세우기 시작했다.
성난 채 파도처럼 언제든 덮쳐올 듯 쩍 벌린 아가리가 원래대로 잔잔해진다. 틈을 기다렸다가 완전히 적을 삼키기 위함이다.
그가 가진 특성. [검과 격투술의 천재].
그것이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는 증거다.
이 특성은 나 역시 가지고 있으므로 잘 안다.
아니. 그 누구보다, 잘 안다고 할 수 있겠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는 성장하고 있다.
‘그게 이너 루나틱에서 등장하는 천재라는 족속들이니까.’ 천재란 최악의 순간, 한계까지 몰려있는단 한순간에도 무릇 성장해버리고 마는 존재니까.
하지만.
‘늦었어.’

촤아앗!
나는 흑색 검흔을 남기며 파라켈수스의 어깨를 향해 정확히 검을 내질렀다.
횡 베기도, 흑검을 이용한 [흑도일섬]도 아니었다.
그저 단순한 찌르기 동작.
파라켈수스의 당황한 동공이 나를 훑는다.
그 사이에도 그는 최대한 내 공격에 반응하기 위해 몸을 돌리고 있다.
경이롭다 해도 과언이 아닌 반사신경이다.
“꺼져라.”
나는 낮게 깔린 목소리로 놈의 어깨를 정확히 찌른 뒤, 진심을 담은 목소리로 이었다.
“지금은 너 따위에게 신경 쓸 때가 아니니까.” 그와 함께, 아득한 빛의 명멸과 함께 파라켈수스의 몸이 넘어간다. 바닥에 털썩 쓰러진 몸. 어깨 위로부터 핏줄기가 솟아오른다.
‘…뭐, 이 정도 상처는 괜찮겠지. 괴물 같은 회복력을 가진 놈이니. [잔병치레]까지 달고 있는 내가 걱정할 놈은 아니다.’ 그보다, 지금은 당장 해야 할 일이 있다.
쉬이이… 쉬이이…!
엘레노어. 그녀에게로 접근하고 있는 나이트 워커를 죽이는 것.
엉킨 마력의 덩어리가 곳곳을 누비고 있는 감각이 선명히 내게 느껴졌다.
그래, 때가 되었다는 거겠지.

나는 그 순간,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시계를 보지 않아도 안다. 지금 시각이 정확히 9시 정각이며…….
엘레노어가 마수에게 살해당하는 바로 그때라는 것을.
[액티브 스킬 ‘천재의 시간’을 발동합니다.] 타앗!
땅을 구른다.
세상 모든 풍경이 느리게 흐르는 것처럼 보인다.
인지하는 시간이.
얼어붙은 숲의 정상에서 울리는 마수의 울음이.
당황하는 예비 신입생도들의 목소리가.
찰나의 순간, 모든 것이 뇌리에 선명히 새겨지지만 지금 내 동공은 오직 한 사람의 당황한 시선과 마주칠 뿐이다.
엘레노어 드 리발린.
적갈색의 머리칼을 풍성하게 늘어뜨린 소녀의 그림자 아래로 드리워져, 이내 솟구쳐 오르는 마수의 형상.
나이트 워커.
‘찾았다.’
나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흑도일섬].
나이트 워커를 베었다.
후환을 남기지 않는 정확한 일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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